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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구해 준 등대에서 아침 해를 맞이하다(트렌드2024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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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4.02.27 14:54:01
- 조회수 : 367
은퇴를 하면서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우연히 찾아 간 어느 어촌마을에 반해서 고기잡이를 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경험이 전혀 없으니 마을 사람들의 어선에
취업하여 서투른 어부수업을 받았습니다.
2년 남짓 됐을까요? 이제 나도 내 사업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은행대출을 받아서 작은 어선을
구입하고, 선원 1명을 고용하여 고기잡이에 나섰습니다.
경험많은 선원 덕에 고기잡이는 순탄했고,그런대로 소득이 좋았습니다. 6개월 정도 그렇게 흘러 갔고, 어느 날 선원이
사직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혼자 배를 몰아 고기잡이를 하게 되었죠.
그렇게 홀로 가까운 앞바다를 놀이터 삼아 지내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출어하여 허탕치다가 조금만 더 멀리 나가면
고기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조금씩 조금씩 먼 바다로 나갔습니다. 어느덧 해가 떨어졌고, 바람도 점차 거세
지고 있었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였기에 방향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 가기 위해 방향탐지기를 켜고 항
해하였지만 어쩐 일인지 몇시간이 지나도록 육지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고, 무전기로 해경과 어선안전국에 SOS를 보냈
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죠. 초조해 지고, 불안하여 정신이 혼미했죠.
얼마를 갔을까? 멀리 희미하게 불빛이 깜빡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 이제 살았다. 배의 기름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잘하면 그 불빛을 찾아 갈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의외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불빛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기 시
작했습니다.
그것은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등대였습니다. 사람이 있는지 계속 불빛을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너무 지쳐
서 탈진할 정도였지만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배를 등대에 대고 올라가 보았습니다. 어떤 중년의 사내가 반겨 주면서 먹
고 있던 컵라면을 제게 권했습니다.
먹고 나니 기운이 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날씨가 그리 나쁜 날도 아닌데 어찌 이 한밤중까지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전 그냥 등대를 지키는 일이 좋아요. 아무도 없는 밤에 등대의 불빛이 도움될 일이 없겠지만, 가끔은 아저씨 같은 분에
게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요즘에 아저씨 같이 조난당한 배를 여럿 보았고 도움을 줄 수 있었습
니다. 그게 제 행복이죠. 부디 조난사고가 없기를 바라지만 제가 깜빡이는 불빛이 그 분들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등대계단을 내려 와서 설핏 본 등대입구의 동판에 이렇게 새겨져 있더군요. 나인등대
어선을 몰아 선착장에 도달하니 멀리 수평선에 해기운이 보였습니다.
’그래 오늘 아침 해를 맞아야지. 새 기운을 받아야지. 저 등대가 선사한 상서로운 기운을!’
곰과여우
DM10 구독자
2023.12.1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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